2007년 02월 06일
체념 _ 2+1,
노래를 마치고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근육의 끝까지 풀려버린 상체를 숙여서 인사를 하면
김준수는 보이지 않는 귀한 자신의 한조각을 바닥까지 뽑아내 관객에게 쥐어주고
역시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 반짝거리는 , 눈물나는 ,
난 평생 알 수 없을 본질에 가까운 어떤 것을 한껏 빨아들인 사람이 된다.
♬ 직캠버전,
( 화질과 음질이 좋고 클로즈업이 많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쇼카메라맨이 걸린 고질병, ' 결정적 순간에 관객 잡기' 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팍 터뜨려주는 순간 잠실주경기장을 비추는 센스. )
우리나라 대부분의 쇼카메라맨이 걸린 고질병, ' 결정적 순간에 관객 잡기' 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팍 터뜨려주는 순간 잠실주경기장을 비추는 센스. )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에 씌우는 것처럼 몰입하는 건 김준수의 가장 큰 자산이다.
계측불가능한 순간가속으로 노래가 된다.
단지 노래를 슬프게 ,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래가 된다.
김준수의 개념에서 노래는 아마 부르는 것이 아니라 숨쉬는 것이고 걷는 것이고
밥 먹는 것이고 잠자는 것일 테다.
행복했어 너와의 시간들 , 웃으며 나눴던 연인과의 세월이 눈앞에 스쳐갈거다.
내게서 멀어진 네 모습이 흐릿하게 보-여,에서는 막을 수 없이 눈물이 차오른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연인이 등을 돌리고 있는거다. 정말 점점 시야가 흐려지겠지.
널 많-이 그리워 할것 같아 , 라고 안타까워 하는 주체는 결코 노래속 주인공이 아니다.
가수 시아준수도 아니다. 그냥 김준수다. 지금 눈앞에서 멀어지는 누군가에게 얘는 지금
정말로 손을 뻗치고 있다. 참아야만 한다고 몸서리치는 것도 다신 사랑같은것 하지 않
겠다는 다짐도 , 모두 이별에 거칠게 깎여버린 마음을 부여잡고 온통, 자기가 하고 있는 거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무대에 있는 이 김준수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라고 웃을 땐 4분짜리 격정적인 사랑과 이별을 겪고
말갛게 눈물 씻고 일어나는 사람이 된다.
모든 걸 털어버린 그 웃음이 다만의 훈련된 연기라면 준수는 오스카로 가야된다.
그게 아니라, 정말 또 하나의 사랑을 겪은 거다.
한 곡의 노래를 부르면 얘는 그 때마다 하나씩의 사랑을 관통해버린다.
한 곡의 노래를 부르면 얘는 그 때마다 하나씩 껍질을 벗는다.
지금도 계속 수집되고 있을 變態의 데이터가 어느날 굉장한 양질전환을 이루는 날을
꿈꾸며 김준수 노래 팬질을 한다.
이' 체념 ' 을 비롯하여 ' Lately ' , ' 뮤직웨이브버전 Beautiful thing ' 은 지독하게 진~한
나머지 평소에는 오히려 쉽게 꺼내듣지 못하는데
아주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을 때 -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 분명한 아주
오롯이 나만의 시간에 , 그래서 내가 노래에 푹 잠겨서 나오지 않아도
되는게 분명할 때 , 나는 지금 분명 누구와도 이별하지 않았는데
방금 살이 잡아찢겨진 것처럼 아픈 이별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그럴 때에만에만 꺼내서 듣는다.
이 노래들을 듣는데 쓰이는 내 마음의 용량이 너무나 커서
다른 번잡한 일을 하면서는 들을 수가 없다. 하드 딸린다.
일본활동은 상대적으로 매우 훌륭한 음향환경과 아티스트의 대우,
환율만큼 보장되는 고수익등 많은 장점이 있다.
악곡도 건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론 일본쪽의 수준이 높다는 걸 부인할 수 없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익과 질낮은 음향환경을 무릅쓰고서라도
한국 사람은 한국어로 노래해야 하는 건, 모국어로 전달되는 감정이
외국어로 전달되는 감정을 가볍게 뛰어넘기 떄문이다. 늘 언제나 항상 그렇다.
외국어로는 소화될 수 없는 직독직해로 - 20년간 쓰여온 말로 전해지는 감정은
오직 모국어로 된 노래만이 갖는 한방이다.
하루카나, Begin 이 그렇게 사람을 울렸다 웃겼다 했지만
체념과 같은 식으로 척추로 직접 꽂히는 충격을 줄 순 없다.
설사 내가 일한동시통역사라 하더라도 좌뇌의 필터링을 피할 수가 없다.
특히 이렇게나 노래가 ' 되어서 ' 말을 걸어오는 김준수를 외국어로 노래시키는 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 분 구성분자가 대체 뭘로 되었길래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 있게 된건지는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오날날까지 쭉 - 진심으로 궁금한 일이다.
백날천날 찬양해봤자 모를 것 같은 부분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건 지독하게 부러운 일이며 그만큼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앜~! 표현은 언제나 이렇게 부족하지.
해도해도 흡족하지 않은 김준수 노래찬양은 그래서 아쉬운대로 한마디로 집약해서
꾹꾹 눌러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얘가 내 10년짜리 노래님이다.
사랑도, 이별도, 고난도, 시련도, 안타까움도 많이 많이 겪고
그 희노애락의 진액이 다시 반짝거리는 , 진한 , 끈끈한 , 노래의 한조각이 되어서
날 10년동안 위로해주길 기대한다. 그럴거라고 믿는다. 이런 걸 보면 안 믿을 수가 없다.
# by | 2007/02/06 21:53 | Review !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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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저음부 저음부 염불을 외워대는 건 고음부나 가성, 반가성 에 열광하는 사람보다 김준수의 낮은 음역에 대해서 신경써주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적은것 같아서에요. 그 이유가 전부에요.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배운다는 말 좋네요.
Heart mind and soul 도쿄라이브 같은걸 보면 노래하면서 온갖 쾌락과 사랑은
다 누리는 것 같아서 대체 저러다 시시해서 연애는 하겠나,싶기도 해요. 노래에서 느끼고 있는 감정의 농도보다 더 진한 사랑을 하기는 정말 힘들거 같아서요.